늘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저에게는 비켜 줄 만한 여력이 없었지만 몇 일 전 출근길에 만난 구급차를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비켜주지 않는 차들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더군요.
인턴 때도 세 달을 응급실에서 근무했고, 공보의 때도 3년간 태안에서 응급실 당직근무를 해서 정말 구급차는 셀 수 없이 많이 탔지만, 탈 때마다 늘 느꼈던 것은 구급차에 누워있는 환자 만큼이나 옆에 있는 저도 위험에 처해 있고, 언제나 극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응급실의 특성상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짧게는 10여 분 길게는 몇 시간을 구급차에 타고 달려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평균시속 140km로 때로는 혼잡한 도로를 신호무시, 차선무시, 갓길운전을 해야하는 구급차는 환자만큼이나 의료진에게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구급차를 비켜주지 않는 차들을 만나면 그 차를 피하기 위한 어려움은 더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정말 구급차는 그렇게 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어느 화창한 봄 날 이었습니다. 일요일이었고 환자 분들도 별로 없는 평온한 오전 한 노부부가 병원에 오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두통이 심해 왠만하면 참아보려 했는데 갈 수 록 심해져 아침도 못드신 상태였습니다.
“할머니 머리가 많이 아프세요?” “응,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네… 진통제 좀 먼저 맞으면 안될까?” “네, 진통제는 드릴 수 있는데 제가 진찰 좀 해보고 드리면 안될까요?” “아니, 지금은 못 참겠어… 먼저 주면 좋겠는데…” “네, 그럼 먼저 진통제 드릴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나서는 진통제를 근육주사로 놔 드렸습니다.
“간호사님, 나 화장실 좀 갔다와도 돼나?” “네, 급하시면 먼저 다녀오세요”
그리고는 한 20여분이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여자 화장실이라 들어가지는 못하시고 밖에 서 계셨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할머니가 걱정되서 간호사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빨리 좀 들어와 보세요”
할머니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셨고, 의식은 흐려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호흡은 그런데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숨은 얕고 느리게 쉬고 있었습니다. 빨리 응급실로 옮겨서 맥박과 혈압을 측정했고 다행히 아직은 정상 소견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병원에는 저와 간호사, 간단한 방사선 사진을 찍는 방사선기사 세 명이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헸지요.
구급차를 불렀고 기도 유지를 하면서 간간히 인공으로 숨을 불어넣어주며 구급차를 탔습니다. 제 판단에는 뇌출혈일 가능성을 생각하고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여하였고, 차에 올라타며 할아버지께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죠.
“경태야(가명) 엄마가 머리 아파서 병원왔다가 주사 맞고 다 죽어간다. 빨리 서산으로 오너라”
태안에서 서산까지의 거리는 약 20km 정도인데 제 기억에 약 15분에서 2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병명이 맞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태안에서 서산까지의 길은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길이 상당히 좋습니다. 왕복 2차선 매끈하게 빠진 새로 포장된 도로지요. 일요일 오전 복잡하지 않은 이 도로도 타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의 마음은 무척 복잡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어떤 조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죠.
비켜~이 아침 이 도로에서 만나는 아무런 급할 것이 없는 차들의 서행도 구급차에게는 때론 위험한 요소들이 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베푸는 작은 배려도 구급차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요.
늘 긴급 자동차들은 그런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런 긴급 자동차를 피해주지 않으실 분들은 없지 않을까요?
참,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하시죠?
할머니를 서산으로 보내고 돌아와서 한시간쯤 후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진단명은 뇌지주막하출혈(흔히 뇌출혈이라고 하죠) 이었고, 인천으로 수술을 위해 다시 이송했다는 말만 듣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낯익은 할머니께서 머리를 삭발을 하고 오셨더군요. 그 날 인천 모 대학병원에 갔다가 중환자실이 없어서 서울의 모대학병원으로 다시 같은 이유로 분당의 모대학병원에서 옮겨져 수술을 받고 퇴원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날 주사를 잘 못놔서 혼날 뻔한 저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죠.
그런데 문제는 이 수면마취라는 것이 본인만 기억을 못하지, 사실 수술 중에도 환자의 의식이 계속 깨어있으므로 말도 하고, 대답도 하고, 아파서 소리도 지르고, 심지어는 별별 헛소리를 다한다는 거입니다.
또한 이 수면마취는 평소에 주량이 쎈 분에게는 잘 듣지 않는 다는 거…즉 평소에 술을 즐기시는 분들은 정상적인 용량에는 반응을 하지 않아 잠을 잘 안 잔다는 겁니다.
수면마취 주사약을 주입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심하면 약이 들어가는 순간, 혹은 주사 후10초 이내에 잠깐 잠이 들고 5분 정도 후에 깨어나야 하는데, 저 같은 애주가^^ 는 약을 주사해도 잠이 들지 않아 용량을 늘려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면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사이에 마구 마구 헛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
저도 사실은 수면마취에 대한 아주 창피한 기억이 있답니다. (물론 전 기억이 가물 가물 하지만, 남들이 알려주더군요 –;)
이런 마취가 더 좋을 것 같죠 ^^ 재탕이긴 하지만 ㅋㅋ 수 년전에 처음으로 수면마취를 해봤습니다. 가끔 배가 너무 아파 고생을 하면서도 죽어도병원에를 안가니 제 마누하님께서 하도 하라고 해서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지요.
저는 연세대학에 있었던 시절이고, 그 당시에는 김안과병원이 건양병원이란 이름으로 바꿔모든과가 다 있는 종합병원이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끌려와 내과샘에게 내시경을 하기로 했죠. 그런데 수면마취를 위해 주사를 했다는데 도무지 졸리지가 않은 거에요.ㅋㅋ 그러니 선생님께서 술 쎄냐고 물으신 후 마취약을 조금 더 놓더군요.
여기까지가 그날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대화랍니다 —.
내시경을 하고 있는 도중에 간호사에게 나도 보고 싶으니 모니터를 제 쪽으로 돌려 달라고 했데요.. 조금 있으면 입에 내시경 넣고 웩~웩 거리고 있는 넘이 무얼 어떻게 보겠다고 그랬는지…ㅎㅎㅎ
그랬더니 그 간호사가 “샘, 끊나면 녹화 되니까 그 때 보시면 되요”라고 친절히 대답을 했답니다. (이거 전 기억이 안나서 계속 남의 표현을 씁니다 ^^)
물론 그 간호사도 제가 누군 지 알고 있고, 수면마취하고 있으니까 그러겠지하고 웃으면서그냥 있는데, 제가 ‘계속 돌려 달라고, 나 좀 보자는데 왜그러냐구’ 하더래요…
머 정신나간 넘이(이 당시에는 이런 표현이 적합합니다 ㅎㅎ) 말하는 걸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또한 내시경이 들어가고 나면 아무말도 못하니 이제 괜찮겠지 하면서 그 간호사분은 그냥 웃으면서 참으셨나봐요.. —
그러곤 잠시 후에 제 마누하님께서 오셨다고 하는데(물론 전 생각이 가물 가물.. ㅎㅎ 온 것도 같더라구요 이 오시니 제가 마구 일르더래요
“야~~ 제가 나 모니터 안 보여줬어,,, 제 되게 못된 것 같으니 짤라 짤라~~~”
–;
아니 제가 글쎄, 이렇게 젠틀하고, 친절한 제가 세상에, 세상에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그 간호사가 무신 잘못이 있겠습니까? 또 지가 뭔데 남의 병원 간호사를 짜르라고 합니까? 그리고 초딩도 아니고 웬 엄마한테 고자질???
"짤라~~ 짤라~~~" 뭐 술취한 것하고 똑같지요...--; 그리곤 조금 쉬었다 가라고 하니, 난 괜찬다면서, 빨리 가서 일해야 한다고 하며 빨리 결과를 알려달라고 부득불 우기더니 내시경 할 때 찍은 사진 받고, 설명 듣더니 바로 일어나서 가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시경이 끝나고 병원에 돌아왔는데, 지갑이 너무 빈거에요…내시경 비용도 있고, 저도 쓸 돈도 필요하고 해서 분명히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한 50만원 정도 가져갔는데, 지갑이 거의 비었더군요.
아무리 수면 내시경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돈이 많이 들었을리가 없는데, 이상해서 마누하님께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우리 마누하님, 배꼽을 잡으면서 자기 왔다 갔던 거 기억나냐, 간호사 짜르라고 한 건 기억나냐 묻더군요…
물론 전 하나도 생각이 안났지요…
그랬더니 계속 웃으면서, 내시경이 끝나고 나니까 지갑에서 돈을 꺼내더니,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내과 선생님에게, 고생했다며, 팁이라고 하며 돈을 집어 선생님 주머니에 마구 넣어 주고 가더라는 거에요… –;
그래도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건, 흰봉투 내놓으라고 해서 그 안에다 돈을 넣어 주긴 했다더군요.
미치겠더군요…., 창피하기도 하고, 솔직히 돈도 아깝고…푸하하~~
저 그 다음부터 수면내시경 절대로 안합니다.
그냥 웩~웩~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ㅎㅎ
이렇게 수면마취를 하면 평소에 하는 짓이 다 나온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딴사람은 다 아는데 자기만 기억을 못한다는 거…사람 바보 되는 것 한순간이더라구요…ㅎㅎ
이번에는 수술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마취, 그 중에서도 수면마취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구요.
제목에서 아셨겠지만, 역시 이번에도 씨리즈로 나갑니다…
미드를 능가하는 옆집eye 씨리즈…ㅎㅎㅎ
여러분도 아마 가끔 들어보셨을 것 같고, 최근에는 마취 중에서 수면마취에 대한 요구가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내시경, 대장 내시경, 성형 수술 등에서 수면마취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요구에 의해 최근에 저도 수면마취를 몇 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수면마취의 비밀을??
뽀얀 우유빛 액체... 바로 수면마취에 사용되는 마취제랍니다 ^^ 예뻐 보이지만 맞으며 바로 기억상실... ㅎㅎ
사실 수면마취란 수술 중에 자면서 하는 마취가 아닙니다.
마취는 다 아시다시피 전신 마취와 국소마취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전신마취는 수술 내내 마취제을 흡입하여 말 그대로 전신을 마취시키게 되므로 수술이 끝날 때까지 환자분은 전혀 의식도 없고 통증 없이 수술을 마칠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전신마취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마취를 아예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간혹은 수술전 검사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는 분도, 특이체질로 인해 수술 중에 정말로, 정말로 의사들의 특별한 잘 못 없이(정말로 이런 경우가 있어요…), 마취만으로도 아주 위험한 경우에 이를 수도 있지요.
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병원과 환자보호자간에 큰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답니다. –;
그래서 환자분들 중에는 전신마취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분도 많고,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수술 후에 기억상실 혹은 지능지수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도 많으십니다.
제 경험으로는 전신마취 후에는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감소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수술 후에 간혹은 수술 전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것을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으로 장기적으로 보면 전신마취를 한다고 해서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지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까 말이죠,
사실 우리 애들도 전신 마취를 몇 번 했죠. “의사 집안이 무의촌?”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집안이 무의촌이다보니 맹장 터져 복막염되고, 편도선이 때문에 경기를 몇 번 한 후에 수술 받고, 뇌수막염에 걸리고……
하여간 몇 차례 전신마취를 했지만, 바보 되지 않고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
(혹시 그 영향으로 공부를 못하나?? ㅎㅎㅎ)
이렇듯 전신마취에 는 여러가지 번거러움이 있으므로 안과 영역에서는 국소 마취를 선호합니다.
국소마취는 우리가 마취하고자 하는 부위만 마취주사를 놓아 부분마비를 시키고 수술을 하는 방법입니다.
즉, 수술 내내 계속 의식이 있어, 수술 중에 눈 앞에 칼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마취가 풀려 간혹 통증이 유발 되기도 하고, 레이저를 사용하거나 지혈을 위해 지혈기를 사용할 때는 살타는 냄새가 나는 등 불안함 속에서 수술을 마치게 되지요. (생각만 해도 겁나시죠?? ㅎㅎ)
눈꺼풀에만 국소마취를 하는 모습. 조금만 천천히 해야 안아파요 ^^
하지만 국소마취에도 많은 제한이 있습니다.
공포에 질려 머리를 흔들며 울어대는 어린 아이는 불가능하고, 수술 부위가 광범위하거나 수술시간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실행할 수가 없지요. 또한 아주 겁이 많으신 분들, 그 중에서도 전에 수술을 한번 받아 보신 분들은 국소마취로 다시 수술을 하게 되면 그 두려움이 너무 심하여 수술자체를 망설이게 된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수면마취가 많이 알려져 그것을 요구하는 분도 많으시고, 병원에서도 수면마취를 해서 통증 없이 국소 마취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수면마취는 수술 중에 계속 자면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수면마취를 하여도 수술 중에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수술을 받게 되지요.
그럼 왜 그게 수면마취냐구요?
ㅎㅎ 그렇습니다. 사실 수면마취는 국소마취를 하기전에 주사를 놓아 환자를 5-10분 정도잠깐 재워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고, 그 사이에 잽싸게, 얼릉, 빨리 국소마취주사를 놓게 되면, 환자는 기억을 못하는 거랍니다.
수면마취제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10초 후면 이 분은 기억을 잃게 된답니다. ^^
즉, 수면마취가 아니고, 기억상실 마취라고 해야겠지요.. ^^
여러분 아셨죠?
수면마취는 사실 환자분이 통증을 못느끼는 것이 아니고, 통증을 기억을 못하게 하는 마취랍니다. 사실은 수면 주사약을 주고 마취를 하여도 환자의 몸은 고통에 꿈틀거리지만, 기억이 나지 않기에 마치 자기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속이는 거지요.. ㅎㅎㅎ
물론 10분 정도의 기억만 가물 가물 할 뿐 마취 후에는 모든 기억이 되돌아 오니 걱정하지 마세요.. ^^
가만히만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리는 여름입니다. 올 여름 첫 피서로 병원 캠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버스에 올라 바다를 보기까지 몸도 피곤하고, 날은 덥고……그리하여 춘장대로 향하는 버스에서 에어컨 밑에 옹기종기 앉아 좀비처럼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런 날은 집에 앉아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나 먹으며 낮잠자는 게 제일 좋은 데…라는 말을 웅얼웅얼하면서 말이죠. 역시~잠은 대자로 자야해~음냐음냐~ 자연이 참 신기한 것이 숙소의 베란다에서 보이는 바다를 본 순간, 이왕 온거 재미있게 피서라고 생각하자는 마음이 들더군요. 첫 시작은 “갯벌체험”이었습니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습니다. 깔깔거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귀엽게 묻은 진흙은 어디가고 새카만 얼굴에, 새카만 안경을 쓴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까지 새카만 교관이 나오더니 저희를 끌고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곱게 단장한 얼굴에 선크림 보호막을 쓴 피부들이 덜덜 떨기 시작했죠. 조를 나누어 저희는 무거운 보트를 들고 바다를 향해서 힘겹게 걸었습니다.
얼마나 좋아보여요...ㅡㅡ^ 바다 위에서 물에 빠지는 참사(?)를 겪지 않기 위해 구령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저으며 서해바다를 돌아다니는 저희가 신기했는지 바닷물 속에서는 새끼 가재가, 바다 위에서는 갈매기들이 구경을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구령소리를 낼 기운도 없어질 정도록 우리는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노질에 맞게 서로의 노를 맞춰가니 배는 앞으로 속도를 내며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조원들은 점점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열심히 토론을 하고,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외치던 것 보다 몸으로 부딪치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함께 움직이는 모습들이 더 잘 보여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무사히 체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온갖 근육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팔을 들어올리기만 해도 울려 퍼지는 그들의 비명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녁은 백사장에서 펼쳐진 “화합의 밤”을 가졌습니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끼 넘치는 이들의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검사실 미녀 4인방은 “텔미춤”을, 수술실 신규선생님들은 “뱀송춤”을, 병동 어린이들-물론 이 안에는 저도 포함되었답니다^^;;-은 “So Hot춤”을 선보였습니다. 또, 원무팀에서는 듀엣곡을, 망막과 최문정 선생님은 솔로곡을 열창 하셨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근육통도 잊고 신나게 한바탕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름의 밤은 깊어갔습니다.
병동팀 어린이들..아~부끄럽다..ㅎ 다시 아침이 밝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그렸습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미소 지어지는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휴가를 남편 덕분에 갑작스럽게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제주도로요~ ㅎㅎㅎ 남편 회사에서 어찌어찌 하여 제주도를 보내준다고 하고… 거기다 부인까지 경비지원 된다고 하여 갑자기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공짜잖아요~ ^^;;; 얼른 손들었쬬~
쫌 챙피하지만… 저….제주도 처음 가봤어요 ^^;; 으흐흐~ 촌년이죠? 그래도 비행기는 처음 아니에요!! ^-^;;
제주도에 도착한 날 날씨가 너무 좋아 렌트카를 받자마자 바로 “우도”로 향했습니다. 우도는 날씨가 안좋으면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근데…정말 뜨겁더군요…으~ 날씨 너~~무 쬬아 -.-;;
우도에 들어가서 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산호사해수욕장” (“서빈백사해수욕장”이라고도 불려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산호로 이뤄진 곳…새하얀 백사장이 모래가 아닌 동글동글한 산호알갱이(?)로 되어 있어서 눈부신 바다를 더 눈부시게 만드는거 같았습니다. ^^
그! 런! 데!…. 글을 쓰면서 공부 좀 해보고자…네이뇬에 찾아보니….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산호로 이뤄진 곳으로 알려졌으나….다시 조사한 결과 산호가 아니라 “홍조단괴”라는 희귀돌로 판명났다’는 기사가 있네요… -.-;; ㅋㅋㅋ~ 백사장에서 남편에게 “이거 산호야~ 이거 들고 나가면 벌금 3천만원이래~”라며 완전 잘난척 했었는데..ㅋ 아니네요~ ^^;; 근데…산호라고 해도 믿을거 같아요~ 딱!! 그렇게 생겼거든요~ㅎㅎ 눈부신 산호사해수욕장 암튼… 눈부신 산호사해수욕장에서 완전 신나서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놀다… 제 살이 뻘~겋게 익어가는건 전혀 몰랐습니다….-.-;; 완전 먹기 좋게 익었다는거… 지금도 살이 따끔따끔…X자로 익은 어깨 때문에 옷도 편하게 못입구… ㅠ.ㅠ 바보 수달… 그래도 신나게 놀았어요~ ^^;; 이것이 바로 "홍조단괴"
첫째날 우도에 들어가 “산호사해수욕장”을 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항” → “지두청사” → “검멀레” → “하고수동 해수욕장” 등등 아주 알차게 보고 나왔습니다. (지두청사는 전에 1박2일에서 갔던 곳이죠~ 출연자들이 거기서 말도 타고 그랬었는데…그래서인지…말 몇마리 매어놓고, 1박2일 장면 캡쳐해서 뽑아놨더군요~ㅎㅎ)
그리고 우도를 나와 드라마 “올인”촬영지로 유명한 “섭지코지”로 향했습니다. 이병헌, 송혜교가 나온 드라마여서 그런지 중국, 일본 관광객이 많더군요~ ㅎㅎ 안개인지…구름인지…”해무”라고 하던가?? 암튼…바람이 많이 불고, 해무가 심해서 금새 머리카락과 몸이 축축~~ 와우…찝찝해 ^^;; 드라마에서 봐서 그런지…볼건 그닥 없더라구요~ㅎㅎ 해무가 끼지 않았더라면 쫌 볼만 했을거 같은데…쫌 아쉬움~
둘째날… 둘째날도 역시나 햇볕은 쨍쨍~!! 덥다~더워~~ 아침 간단하게 먹고, 숙소에서 가까운 “용두암”부터 GoGo~ “용두암”은 용이 승천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기암으로..화산 용암이 바다에 이르러 식어서 생긴 것이라고 하네요~
거긴 볼게 별루 없어서 기념 사진만 찍고 패스~ ^^/
그 다음은…한국 최초의 차 전문박물관이 있는 “오설록” 설록차박물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푸른 녹차밭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잘 가꿔진 정원도 너무 이쁘더라구요 ^^ 녹차밭 앞에 “컵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조형물도 너무 깜찍해서 사진 한방~ 찰칵!!
여기도 기념 사진은 찍었고,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까 바닷가로 가자~!! ^0^
오설록뮤지엄에서 쫌 멀지만 “중문해수욕장”으로~
여기도 바닷가라서 그런가?? 해무가 쫌 끼었는데 다행히 뜨거운 햇살을 살짝 가려주어 오히려 좋았습니다~ 바닷가에서 튜브 빌려서 파도 타며 3시간 정도? 완전 신나게 놀고~ 게다가 남편이 백사장에서 “만원”도 줍고~ ㅎㅎㅎ 완전 능력있어 멋저부러~!!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맛있고 푸짐한 횟집을 찾아 “맛집 추천책”을 살펴서 결정한 곳!! 바닷가를 내려다 보며 회를 먹을 수 있는 곳 “동해미락” ^-^ 으흐흐흐~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수달장군~!!
전복 양식 소라 & 자연산 소라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고등어회랑 갈치회를 먹어보기 위해 잔뜩 기대하고 먹었습니다. 갈치회는 생각보다 그리 맛있지 않았던거 같고…고등어회는 생각했던거 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고등어”하면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고등어 생각이 나서 왠지 비릿할거 같고, 날 것을 어떻게 먹어야할지..망설여졌었는데…안으로 넣어 씹는 순간…. 사르륵~ 녹는 고등어!! 너무 부드럽게 살살 녹아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둘 다 “오~ 맛있다” ㅎㅎㅎ~
시원한 국물 "조개탕"
이것이 바로 메인!! 꺄아아아~오 너무 쬬아~
윗부분이 뱅어돔, 아래가 황돔 윗부분의 밝은색 껍질이 붙어있는 “뱅어돔”은 “황돔”에 비해 더 쫄깃쫄깃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더 꼬~소했습니다. 앙~ 너무 맛있어 ^0^
너무너무 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둘이서만 먹으려니 더운데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도 나고~ 병원에서 더위와 싸우며 열심히 일하고 있을 동료들도 생각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맛있게 먹었어요~ㅎㅎㅎ ^-^;;
푸짐하죠? 이거 우리가 다 먹었어요~ 저 많은 것을 다 먹고 마무리로 “매운탕 & 밥”을 먹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터져도 밥은 먹어야죠~ㅎㅎㅎ
밑반찬으로 나온 오징어젖, 김치 배터지게 먹고 행복한 기분으로 완전 골아떨어졌습니다~ 바닷가에게 너무 신나게 놀았나봐요 ^^;;
다음날…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을 착시현상이 있는 “도깨비도로” 체험과 수목원 잠깐 가서 산림욕(?) ^^;; 하고 제주공항으로 갔습니다.
너무 좋은 날씨에 비행기에서 아래가 훤~히 보이더군요…^^ 비행기에서 내리니…웬걸…너무 뜨거운거 있죠~ >.< 제주도에서 있을 때는…이렇게 뜨거운지…내 살이 까맣게 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서울에 오니..너무 뜨겁고, 확~!! 찌더군요…-.-;; 으…죽을뻔 했어요~ㅎ
제주도에서의 즐거운 날들을 추억으로 남기고… 내일은 또다시 직장인으로~ ^^ 열심히 잘 놀았으니까…일을 더 잘하겠죠? ㅎㅎㅎ
여러분들도 여름휴가 잘 다녀오시구요~ 휴가 다녀오셔서 더욱더 열심히 일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바다든 산이든 휴가지에서 사고나지 않게 조심조심 또 조심하세요~)
사실 1탄에서 말씀 드리기를 이번 홍콩학회에 실망을 많이 했다고 했는데, 이 말은 우리나라 안과의 의술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 하다보니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세계석학들이 모인 자리라서 사실은 여러가지 배운 점들도 많았고 앞으로의 라식전망도 짐작 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곳에서 배운 것 들에 대해서 그리고 라식의학에 대한 최신 경향 등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학회에서 기존의 라식이나 라섹 수술에 대한 새로운 기법이나 특별한 수술결과 등이 나온 것은 없었고 수술결과도 단연 우리나라의 수술 결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실험 단계이며 그 결과가 검증 되지 않았고 현제의 라식이나 라섹처럼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몇 년간의 연구가 더 필요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실현 가능성 있는 시도들이었다고 생각되며 십여년 내에는 현실화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라식수술을 할 때 미세각막칼이나 레이저(인트라레이저수술)로 각막의 절편을 만든 다음에 그 절편을 벗겨서 제치고서 엑시머레이저로 각막의 일부분을 깍는 방법으로 수술을 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자료에서는 그 각막절편을 만들지 않고 직접 레이저로 각막의 실질을 깍는 방법이 발표되었습니다. 아직은 노안 수술에 국한되어 시도된 수술 방법이었지만 이 방법이 발전되어 라식이나 라섹을 대체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각막절편을 만들어야 하는 위험성이 많이 줄어들 뿐 만 아니라 수술 합병증도 더 줄 것입니다.
각막절편을 만든 후 레이저를 쏘는 모습
또 다른 하나는 역시 라식처럼 각막절편을 만든 다음에 엑시머레이저로 각막을 깍지 않고 아주 얇은 (10마이크로미터) 렌즈를 각막절편과 각막 남은 실질 사이에 삽입 하고 다시 덮는 수술방법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역시 현제는 노안 수술에만 제한 되었지만 수년내에 일반 근시에서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 수술의 가장 큰 장점은 각막을 레이저로 깍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안과의사의 입장에서 뿐 만이 아니라 눈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수술은 없어보입니다. 언제든지 예전의 눈 상태로 돌릴 수도 있구요, 각막을 깍지 않아서 합병증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각막절편과 실질 사이에 들어갈 렌즈
아직까지는 연구단계에 있는 수술법입니다. 여러실험들을 거쳐서 결과가 검증된 후에 사람에게 시도 될 수 있겠지요. 여러 실험 중에는 실패해서 없어지는 수술도있고 성공적으로 살아남아서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하는 수술법이 되기도 하지요.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을 손에 잡았던 때가 벌써 3년이 다 되었군요. 당시 내가 정말 원한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게되어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된 책이 되었습니다.
서른 즈음부터 시작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얼까에 대한 고민은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고, 뭐 지금도 늘 찾아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고민들이 지금은 날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확실한 생각으로 만들어 주었군요. ^^
올 봄 병원에서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든 꼴라주가 병원 1층에 전시되어 있네요. 저희 조는 순위안에 들지 못해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물론 꼴라주의 주제는 병원의 미션과 핵심가치 도출을 위한 작업이었지만 나 자신의 미션과 핵심가치는 무엇일까하는 질문도 해 볼 수 있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생각도 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병원에는 원장님이 계시고 병원을 경영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있고 나자신을 어떻게 경영해 나갈까 고민한다면 살아온 삶이나 행동에 더 자신감있고 뒤돌아 후회할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이다” 라는 책은 제가 공보의 당시 청년의사 주관으로 독후감을 모집하는 책으로 선정이 되어 읽게 되었고 독후감도 쓰기는 했는데 안타깝게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쓴 글 한줄한줄마다 당시의 제 고민이 깊게 스며있는 것을 다시 읽어도 저는 느낄 수 있네요.
2005년 그나마 상태 괜찮을때 사진도 같이 올려봅니다.
참, 이번에 새로운 블로거를 모집한다는 메일을 보셨지요. 블로거의 장점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춘장대 야유회를 보면 우리병원 직원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는 듯한데.. 많은 성원 바랍니다.
글은 조금 긴듯하여 감추어 놓았습니다.
[#M_ more.. | less.. |햇살이 진료실 창을 통해 들어온다. 공보의로 낳설게 태안에 온지도 3년째이다. 이제 내년이 되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거다.
아직은 여름햇살이 나의 얼굴에 들이고 있지만 좀 지나면 날도 추워지고 난 또 어딘가에 나를 담을 곳을 찾고 그곳에 익숙해져 갈것이다.
2년이 넘게 공보의를 하며 난 참 이것저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것 같다. 대부분 한때의 관심으로 머물긴 했지만 여전히 즐기고 있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마추어로 머물지 않기 위해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그 기저에서 부터 책을 찾아 읽곤 했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총론에서 헤매이긴 했지만 말이다.
디지털 시대이다. 모든게 빠르게 흘러만 가고 오늘은 벌써 어제의 내일이 아니라 훨씬 더 앞서나가고 있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빨라져 버린 시간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그것은 벌써 지나온 과거가 되곤했다. 그래서 난 과거에 머물지 않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찾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바빠야 했고, 치열하기를 원했지만 난 빨라져 버린 시간을 탓하며 나의 눈은 언제나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기만 했다.
지금 기억으로 처음 나의 손에 잡혀 있던 책은 경제관련 책이었다. 전공의 시절 적은 월급으로 둘이 살기에는 부족하나마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지만 집을 사고, 헌차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물론 욕심없이 안빈낙도를 꿈꾸며 공보의 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겐 그런 마음의 여유는 있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 쓴다는 것의 의미를 가져다 준 책은 바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였다. 비슷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내 손에 “돈”이라는 책을 손에 쥐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을때, 내가 원한 것은 이것은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자극적인 제목의 책은 들고 다니며 읽을 만한 책도 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라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난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다들 자기방에서나 읽을 만한 책이었을 거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던 책은 경제원론으로 옮겨갔다. MBA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GMAT을 사기도 했지만 그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하며 알게됬다. 이 길은 아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관심들은 법, 심리, 교육, 지식, 사회등을 거치며 달라져 갔지만 어디에도 마땅한 안식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자주 인터넷 서점을 들어간다. 어떤 흥미로운 책들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관심들의 공통적인 한가지는 책을 통해 내가 삶에서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내가 가고있는 길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사진이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삶의 방향에 가까운 책이다. 렌즈가 향하는 방향 그것은 바로 삶의 방향인것이다. 사진을 찍다보면 아니 사진기를 사고 렌즈를 사고 무엇인가를 찍다보면 장비병이 생긴다. 그건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피할 수 없는 병이다. 조리개를 조정하고, 셔터 속도를 조정하고, 노출을 보정하는 작업은 그저 사진을 찍기위한 기술에 불과하다.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나에게 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큐멘터리는 안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찍으며 희희낙락 하루하루 밥벌이에 연연하는 그 배짱으로, 삶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배를 곯며 카메라 한 대로 지구촌을 돌아다닐 수 있겠어?” -글 중 –
그리고는 곧 나에게 비수로 꽂힌다. 젊은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공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며 살 것인가? 비록 나의 꿈은 접더라도 바로 지금 보다 나은 급여를 보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을 것인가?
큰집, 좋은차, 아름다운 병원을 꿈꾼다면, 난 이미 사막으로, 비탈진 산으로 들어가 보게 될 아름다운 광경은 이미 포기한 것이다.
사진을 보다 보면 사진 안의 어떤 메세지 보다는 어느 렌즈로 찍었을까? 조리개는 셔터 속도는 노출은 어떻게 주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러한 상황은 내 삶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어디서 공부를 하고,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했을까? 이런 질문이 우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질문은 항상 이렇다. 난 그랬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한다. 빛을 잘 이용하여야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출도 중요하고 어두운 것은 어둡게, 밝은 것은 밝게 찍으라 했나보다. 삶에도 명암이 있다. 유독 사진을 좀 찍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명보다는 암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처음엔 나도 아름다운 모델, 자연, 도시들을 보며 좋다라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서 유명하다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 그것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허름한 집들, 깊이 패인 주름, 피곤한 일상, 굶주린 듯한 아이들의 눈빛, 노숙자의 저녁…. 세상에서 소외되어 보이는 그들을 담아내는 사진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된다.
몇일전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별다를 것도 없는 일에 또 눈물이 흘렀다. 원래 눈물이 많아 영화나 텔레비젼을 보다가도 눈을 훔치는 일이 많은 나이지만, 참 오늘은 사진으로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전철에는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간단한 껌이나 볼펜을 파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고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줌마는 나이가 젊어 보이고, 등에는 아이를 엎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전단지를 주지 않고 두세명에 한장을 잰 걸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특이하다면 그러했다. 보통은 전철 한칸을 다 돌아도 천원 한장을 손에 쥐지 못하는 게 다반사 일테고 그래서 좀더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했는지 모르겠다.
전철안에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내가 보고있는 정면에는 어디 쇼핑을 가는 듯한 중년의 아줌마 일행 셋과 일행이 없는 젊은 아가씨 한명이 전단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고, 딸에 집에서 오는 듯한 아주머니 한분은 연신 전단지를 돌리는 아줌마를 응시하고 그 옆에는 배낭을 가진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대개의 경우라면 그냥 쓸쓸히 전단지를 줍고 가는 것이 보통이련만, 아줌머니 일행에서 부터 관심없던 아가씨, 그리고 배낭을 가진 젊은 남자까지 모두 물건을 사주었고, 아이를 맨 아주머니는 고마움을 감추진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놀라운 광경이 내게는 아니었다. 내가 놀라게 된 것은 다음칸으로 넘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에 있었다.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연실 눈물을 훔치는 뒷모습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고 내눈도 촉촉해 졌다. 이런 장면은 한장의 사진으로 정말 남기고 싶다. 그게 바로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니 말이다.
나를 이렇게 감동시키는 삶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음에도 난 늘 더 높은 곳은 더 화려한 곳을 찾았다. 그것이 밝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밝음 뒤의 그림자를 보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두려움에 휩싸여서 말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고생스런 한해가 되기로 결심을 해본다. 고생스런 배움의 길은 가진 자만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은 내가 배움의 길을 택하지 않는 변명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유로와 질 수 있을 것 같다.
창으로 들어는 빛이 제법 낮아졌다. 빛이 낮아질 수록 내눈으로는 더욱 강하게 들이친다. 저 빛 너머를 난 항상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뒤의 그림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은 더 이상 기록이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이고, 내 삶이며, 미래가 될 것이다. _M#]
2008년 6월 25일 2008 비즈니스블로그서밋이 있었습니다. Web 2.0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비즈니스(홍보/마케팅)분야에서의 기업들의 준비자세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동해가는 흐름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며 미리 자리를 잡은 부지런한 기업들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지 많은 홍보관계자분들께서 참석하셨더라구요…
단연 중요한 키워드는 “블로그”였어요!! 어찌나 어려운 말들을 써가면서 전문적으로 발표를 하시는지 현재 병원블로거로 활동은 하고 있지만 참 답답한 맘으로 발표를 들었습니다.ㅠ.ㅠ
블로그를 통한 비즈니스 마케팅에 대해서 여러 사례발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옆집아이 블로그도 기업블로그 성공사례발표에 끼게 되어 한때는 테리우스이셨던 원장님께서 발표를 하셨죠!!!
원장님께서 발표할 차례가 되었을 때 제가 더 떨리더라구요!! 걱정이라기 보다는 발표 전에 기아”Buzz”에서 비슷한 내용의 기업블로그 운영사례를 발표했거든요.. 하지만 우리 원장님 너무도 재미있게 경청할 수 있는 발표를 해주시더라구요….
침묵속에서 묵묵히 참관하던 여성분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좋아들 했습니다!!! (다 원장님 왕자병 덕분입니다!!—- 밑에 강의 동영상 보시면 이해되실듯^^) 뭐니뭐니해도 유머가 최고입니다!!
강의 끝나고 블로그를 준비중에 있는 여러 업체들에서 자기들 회사에 와서 강의좀 부탁한다고 청탁을 하더라구요….. 순간 원장님 직업이 의산지 강산지 착각@.@
다음날 블로그서밋에 관한 기사에 “김안과옆집아이 성공사례발표”, “옆집아이블로그 성공이유있다” 다 등의 기사가~~~하루종일 있던 강의중 우리블로그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더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많을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병원블로그의 한 구성원이라는게 참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을테니까요^^(아닌가…..?)
1180090645.bmp흡연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질환들.. 와~ 벌써 7가지의 담배가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있네요. 담배 속에 있는 아려진 19가지의 발암물질과 4,000여개의 화학물질들이 어떤 짓을 우리 소중한 눈에 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답니다.
한가지 더하면 담배는 상처회복을 느리게 합니다. 수술을 받기 전, 후에는 꼭 금연하셔야 합니다. 회복이 느려서 염증이 생기면 누구 손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