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가 안습이에요 ㅠㅠ

 안습이란 말의 본풀이는 안구에 습기차다이고 뜻풀이는 말 그대로 안구에 습기가 찬다는 뜻, 즉 눈물이 난다는 뜻으로 주로 (대상이) 슬프거나 안타까움, 불쌍한 경우에 사용됨을 의미합니다.(네X버 지식사전 인용..) 즉 우리애가 눈물 흘려서 안타깝고 슬프다는 뜻이죠..

우리아이가 안습일 때 몇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크게는 눈썹이 찔리거나 결막염등이 있어서 자극이 많아서 눈물생성이 증가된 경우, 코눈물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있어서 눈물배출의 문제가 생긴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즉, 상수도나 하수도의 문제로 인해 안습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하수도의 문제로 인한 우리아이 안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눈물관이 좁아져있는 경우에 우리아이의 안습은 보통 이렇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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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 삽입 이미지위사진의 좌측 눈처럼 눈물이 고여있고 눈곱도 자주 끼게되며, 눈썹에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고 눈썹이 눈물에 젖어서 안구 안쪽으로 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천적인 코눈물관의 막힘은 일차적으로 비수술적인 치료만으로도 90퍼센트 이상에서 효과를 보기 때문에 오늘은 비수술적인 치료, 그 중에서도 눈물주머니 마사지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교과서에 있는 마사지 그림입니다.




다음은 우리 김안과병원에서 설명드리는 마사지법입니다.참. 쉽죠잉~
(제가 아는 마사지 중에선 이게 가장 쉬운 마사지입니다. ㅋㅋ)


누르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에 나와있는 부위를 누를 때에 딱딱한 뼈부위를 느낄 수 있게  충분히 세게 눌러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누르는 마사지를 5-10회씩 하루에 5번 정도 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  쉽지 많은 않습니다. 갓난아기를 붙잡고 마사지를 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마사지만으로도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해주시는 것이 우리아이 안습을 호전시키고 더 침습적인 치료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애를 붙잡고 가느다란 더듬자를 눈물길로 넣는 처치등..)에 의한 부모눈의 안습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꼭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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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환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녹내장환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녹내장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하나는 언제 실명하게 되나요?”입니다.


시신경이 손상이 진행되어 말기가 되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녹내장 환자들겪게되는 증상은 시력저하가 아닌 시야장애 입니다.


 


시야라는 것은 물체를 있는 범위를 말하는 것으로,
내장이
진행되어 시신경이 손상되면 시야가점차 좁아지게 됩니다.
 
서서히 진행되어 말기까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으며,
시력은 정상이지만 심한 시야장애를 보이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


 



정상인이 보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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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시야장애를 가진 녹내장 환자에게 보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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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진행된 녹내장 환자의 시야입니다.
정도가 되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 녹내장이신데, 말기환자입니다.
익숙한 길이라도 위험해서 혼자 다니시지도 못하고,
제가 앞에 있어도 조금만 빗겨나있으면 알아채지 못하십니다.



 


녹내장 환자에게 운전이 위험한 이유



녹내장
환자 중에 운전을 생계로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진행된 환자분들의 경우 운전은 특히나 아주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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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처럼 여러상황이 나타날수 있으며,
 
주변을 살펴야하는 시야가 중요한 활동은 없습니다.
 
시야가 좁아지게 되면 옆에서 끼어드는 차나, 사람이나 오토바이를 없습니다.
가족들이 차를 발견하고 운행중인 옆으로 다가오면 아주 위험 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있습니다. 골목길을 갈때도 옆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보지 못합니다.
너무나 극단적인 예이지만 어디서고 발생할 있는 상황들입니다.


 


 




기타 다른질환에서 환자들이 보이는 세상


 


백내장환자는 녹내장환자와 달리 전체적으로 흐리게 보여 시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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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매체에 많이 나오는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내가 보려는 중심부위가 보이는 시력저하를 호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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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지는 길은 없고 진행상태만 지연시키는 치료만 가능한 녹내장이라는 자체만으로도
녹내장 진단을 받으면 무섭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모든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고, 갑자기 악화되서 시력은 잃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빨리 자포자기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녹내장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진행하며,
 
환자분들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다면 진행을 지연시킬수 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보니…

아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뉴헴프셔 주에 있는 New Hampton School)를 졸업하게 되어서 지난 5월 말에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은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식은 밀가루와 폭력 걱정 때문에 경찰까지 동원되며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답게 30분 미만의 짧은 식과 몇 장의 사진 찍기로 식이 끝나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경험한 미국의 작은 시골 고등학교 졸업식은 1박2일이었습니다.
첫날엔 오후 5시부터는 식당에서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뷔페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식당웨이터 옷을 입고 그릇을 치우고, 도와주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식사 후 강당에서 2시간 동안 음악, 체육, 영어, 과학, 수학 등의 각 과목 우등생과 봉사상, clam laude 라고 불리는 성적 우등생상(ㅋㅋ 제 아들도 탔습니다), 올해의 선생님 상 등으로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오전부터 졸업가운과 사각모를 쓴 졸업생, 정장을 입은 후배들, 그리고 졸업을 축하하러 온 많은 가족들이 다 야외의 따가운 햇살아래에 앉아서 다시 2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졸업생 대표들의 스피치, 자랑스런 선배의 스피치(미국여군 장교로 이라크에 다녀온 선배가 오~래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는데 잘 못 알아 들었고요…ㅋㅋ) 그리고 당연히 교장선생님의 말씀 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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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졸업생을 단상에 불러서 교장선생님, 혹은 그 학교를 졸업한 가족이 있으면 그 가족이 다같이 단상에서 졸업장을 학생에게 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한명,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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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앉아있던 미국 학부모가 한마디 해주더라고요…
” 오늘 졸업생이 100명 밖에 안되어서 참 다행이다….자기 큰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생수가 많아서 오후 4시에 끝났었다” (헉, 학생 많은 학교에 다녔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ㅋㅋ~)

정식 식이 끝나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먼저 퇴장을 해서 학교 식당까지 가는 길에 쭉 서시고 이어 학생들이 한명, 한명 그 길을 따라가면서 선생님들과 한 분 한분 악수하고 포옹하고 껴안고 울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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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가 30주년이었습니다. 저는 30주년 기념식에 와주신 선생님들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진짜 죄송했는데 제 아들은 30년이 지나도 선생님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러웠습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참 길고 따뜻했습니다. 우리나라 졸업식도 곧 이렇게 바뀌면 좋겠습니다.

백내장이 재발했다구요?

백내장이 재발했다고요?


 


백내장 수술을 받고 한동안 잘 보이다가 다시 침침해졌어요


백내장이 재발한 거 같은데 재수술 해주세요


 


백내장 수술을 받고 밝아졌다고 좋아하시던 환자분이 2년반쯤 지나서 다시 시력이 떨어지셨다며 병원에 오셨습니다.


이때 안과의사의 마음은 복잡해집니다.


예전에 백내장 수술은 아무런 문제없이 잘 되었는데 혹시 망막이나 시신경에 문제가 생기신걸까? 치료가 안될만큼 심각한 문제면 어쩌나?’


여러가지 생각속에 저는, 안과의사의 청진기인 세극등현미경으로 환자분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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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거리는 인공수정체 뒤로 희뿌연 혼탁이 보이는 후발백내장>


 


, 후발백내장이다!!!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제가 치료해드릴 수 있는 질환이기에 맘이 놓였습니다.


 


~, 후발백내장이 생기셨네요.


백내장을 초음파유화술로 녹여서 제거한 다음, 투명한 얇은 막인 수정체낭만 남겨놓고 그 수정체낭 안에 인공수정체를 심는 것이 백내장 수술이에요. 백내장 수술하신 분들 열분중에 세분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체낭이 점점 뿌옇게 혼탁이 오게 됩니다. 이를 후낭혼탁이라고 해요. 후발백내장이라고 하기도 하구요.”


 


환자분을 레이저실로 모시고가서 5분정도 레이저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1주 뒤


 


좀 어떠세요?”


네 전처럼 잘 보이네요. 가끔 떠다니는게 좀 보이는 것도 같지만 훨씬 좋아요.


백내장이 재발한 줄로 알고 재수술을 받기가 무서워서 병원에 올까말까 고민했는데 오길 잘했네요


 


백내장 수술 받으신 분들~~


시력이 떨어지신다고 가슴앓이하지 마시고 병원에 나오셔서 검사 받으세요.


후발백내장은 백내장 수술받으신 분들중에 30퍼센트까지도 발생할 수 있고 레이저로 치료가 될 수 있답니다.


물론 시력이 떨어지는데에는 수술과는 무관하게 녹내장이나 황반변성 등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으니 꼭 병원에 나오셔서 검진받으셔야 합니다. 우리 눈은 소중하니까요~

대한민국 아줌마! 캄보디아에서의 7일.

대한민국 아줌마! 캄보디아에서의 7일.


저는 전문 의료인이 아닙니다. 단지 대한민국의 씩씩하고 튼실한  아줌마 일뿐..


“엄마는 의료봉사 가셔서 뭘 하셨죠?”


일주일간 봉사 다녀온 나를 보고 아들이 처음 물어본 말이었다.


“‘어… 많은 일을 했어. 이것, 저것, 고아원 아이들 혈액형 검사, 수술방 청소와 소독,  그리고 음.. 벌레,날파리들과 도마뱀과의 전쟁.. 땡볕에서 오며 가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이것 저것 주방일도 돕고…아무튼 엄청 바빴어.”


얼결에 대답한 말이었는데, 아들이 잠시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보내던데요ㅋㅋ.
여러분도 잘 아시죠? 딱히 내세울게 없는 사람이 그냥 바쁘기만 한거.
인생의 절반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나봅니다.


마침 막내도 올해 대학에 입학했고, 심적 시간적 여유도 생겼기에… 
김안과 병원 봉사단장님이신 손경수선생님께서 봉사를 다녀오면  자식들이 엄청 잘 된다는 말씀(?)을 하시며 같이 가자고 하셔서  당장.. 오케이!를 외쳤습니다.
(자식이 뭔지.. 참네)
무언가 남을 위해   돕고  나눌 수 있음 좋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날, 저와 손경수샘 둘만   김안과 의료팀보다 3일먼저 그곳에 오밤중에 도착했습니다. BWC 원장스님께서 마중을 나와주셔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둘째날 , 새벽예불을 드린 후 BWC센터를 돌며 아침산책을 나섰답니다..부겐베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매일 아침 연꽃이 신비를 담아 봉긋이 솟아나오고, 이슬 먹은 푸른 잔디를  맨발로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새벽여명은 환상적이었습니다.행복 그자체였답니다.!!

첫날의 새벽 하늘은  짙은 코발트빛이었는데,아마  제 평생 잊지못할 추억의 영상으로 기억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침을 여는 새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까지…


“우와!! 정말 오길 잘했어”


하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침을 먹고 수술방에  가보니 …. 엄청난(?)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 내가 봉사를 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아주 찐~~하게 밀려들었어요.

내가 받은 첫번째 미션은 김안과병원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까지 수술방을 대학 병원 수준의 멸균!!무균상태로 만들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수술방은 수술방이 아니라 정리가 안된 창고수준이었답니다…
뜨악!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하지? 
최근 BWC 센터의 의료봉사지원책임자가 바뀌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사태는 더 심각했지요.
일단 수술방을 청소할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수술방 안에 있는 먼지도 털어내고, 벌레도 잡고, 깨끗이 닦은후 소독약을 묻혀 바닥,벽,천장,수술대,기계까지 열심히 닦았습니다.
몇 번을 닦아냈을까요?
정답은 셀수없이…계속…아주 많이 ㅠ_ㅠ  3일내내…


그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수술방 청소를 도와주던 현지인들은 닦은데 또 닦고 ,
닦은데 다시 닦는게 이해가 안되었던지 저희가 않보면  닦다가 말더군요.ㅠㅠ

보다 못한 손선생님께서 우리를 다 모아놓고 ‘왜 계속 닦아야 하는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곳은 수술방이며 균이 있으면 감염의 위험때문에 수술을 제대로 할수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종합병원 수준의 무균실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손경수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들 다시 힘을 모아 수술방 구석구석을 열심히  닦고 또 닦았습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몰랐던부분이었죠. 저는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였으니까요. ㅋㅋ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진두지휘 하시며 최고의 의료환경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시는 손경수 선생님!
존경합니다. ^^


셋째날 , 어제에 이어 또 수술방청소..그리고 정리.
반복적으로 소독약으로 계속 닦고 닦고 X 100.. 무한반복….



수술에 필요한 도구와 장비들을 모두 다시꺼내 정리정돈 하고 책장을 새로 들여와 의약품미며 거어즈 소독약 등등 도 쓰기 좋게 재정리하고  벌레와 날파리,작은 도마뱀 때문에 수술을 제대로 할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 창문틈으로 벌레가 들어오지지않게  구석구석 테이핑 작업도 했구요.
캄보디아 건물은  유난히 창문이 많거든요.

넷째날, 지난 이틀간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비지땀 흘려가며 빡세게(?) 일 한 덕분에 수술방과 외래 진료실이 여법하게 만들어졌어요.
우와! 뿌듯 해라… 봉사팀이 도착해 의료봉사를 할 수있는 수준으로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분 (알콘 직원분)이 저희 봉사팀에 합류해 주셔서  이날 저는 잠시 짬을 내어 앙코르와트를  다녀올수 있었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섯째날
, BWC센터 이곳저곳에 카메라가 돌아 가더군요.  KBS “다큐3일”팀이 센터에 오셨다네요.
현지  BWC센터 고아원 친구들,자원봉사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터뷰와 촬영을 3일간 할 예정 이랍니다..
촬영 덕분에 캄보디아  아동센터 친구들이 태권도 하는 모습 ,영어공부하는모습, 푸른 잔디밭에서 축구하는 모습들을  볼 수있었는데
음…! 대한민국에서 지원하는 BWC센터..참 훌륭한 곳입니다. 마음을 나누며 지원해주신 대한민국의 후원자 여러분 덕분이라니 .. 감사감사드려요.
고아원 아이들이 구김살없이 잘 자랄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자원봉사자 선생님, 후원자여러분 복받으실 겁니다.
드뎌 이날 밤 늦게 김안과 의료본진들이 의약품과 물품을 잔뜩 싣고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우와! 내일부터는 본격적 진료가 시작되겠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여섯째날 , 새벽부터 BWC센터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그야말로 인산인해.
듣자하니 오토바이를 타고,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차비나 ,교통편이 없으면 몇시간씩을 걸어서  오신다고 합니다.첫번째 날 가능한  일찍 진료를 받아야 수술을 할수있는 순번에 들기 때문이라네요.
김안과병원에서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지난 4년간  1년에 3차례씩  정기적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현지 캄보디아 인들의 보내는  신뢰와 명성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심지어는 대도시에 사는 캄보디아 부유층들이 김안과 의료진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일제 렉서스를 타고 와서 땡볕에서 몇시간씩 기다리는 모습도 있었다니까요.)


아침 7시에 시작한 첫 진료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 되었습니다.
점심, 저녁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며 진료하시는 의료진은  존경! 그 자체였구요.
수술방이며 외래진료실이며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혈액형 검사를 담당했는데  BWC센터아이들  모두를  1:1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늘로  콕 찔러 피를 내니, 두려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존경(?)의 눈빛을 보내 주는 아이들이 내심 넘 넘 재미있었죠.
아이들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예쁘던지…ㅎㅎㅎ


“너희들의 꿈이 뭐니?”
“의사요”, “간호사요”, “선생님이요”, “얼른 커서 돈 많이 벌어 엄마,아빠랑 같이사는거에요”


꿈이 있는 아이들은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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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날 ,오늘이 제봉사 마지막 날 .
아침식사하러 가는 길에 어제 익상편, 백내장수술 마치고 입원하신 어르신들을 뵈었습니다.
눈이 잘 보인다며… 단지 아줌마인 저한테 까지 감사해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지난 7일간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아픈사람을 아무 댓가 없이 고쳐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시는 의료팀.
선한 눈망울과 미소를 잃지않고 땡볕에서 몇시간씩 묵묵히 기다리다 순번이 끊기면 아무런 불평없이 받아들이며  집으로 그냥 돌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 …
가슴이 뭉클! 눈물이 핑!  예비번호표는 드리지만 다음엔 꼭 일찍 오셔야 해요.


바삐 돌아가는 서울살이,  적어도 1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만땅으로 충전이 되었습니다.
혈액형 검사로 친해진 고아원아이들이 제 주변을 따라 다니며 제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곤 섭섭해 했습니다.


누군가가 물었어요 ” 또 오실건가요?’ ” yes” 라고 선뜻 대답하기엔 어려워 빙그레 미소만 보냈지요.
그러나 저는 또 이곳에 올 것 같습니다.


봉사후기를 맺으며….제가 경험한 아름다운 진정성을 적어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손경수 봉사팀장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4시반에  조용히 새벽예불을 다니십니다.
(BWC센터는 불교단체에서 지원하는 곳이라 아담한 법당이 센터내에 따로 있습니다)
고된일정으로 체력적으로 힘들고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죠.


“힘든데 새벽예불 하루 쉬세요 , 밤새 힘드셔서 끙끙 앓으시던데…”
“제가 법당에 가는 이유는 한가지뿐이예요.  이곳에 진료받으러 오는 모든 환자들이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아무리 수술이 잘되도 환경이 열악한 집으로 돌아간후 감염의 우려가 높거든요. 한국이라면 지속적인 치료를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저희 의료팀이 떠나고 나면 아무도 없답니다. 그러니 진실한 기도라도 해야지요.”

아..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가 해외의료봉사에 참여할수 있었던  7일이 끝났습니다.
올 일년 행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안과에는 말하는 시계가 있다.

<!– 
사진 더블 클릭 해주세요^^

저희 병원은 리모델링 공사 중이예요
요즘은 입원실 리모델링 공사 중이고요….
공사때문에 소음이 발생하고 있어 불편을 드리고 있답니다….ㅜㅜ
더 좋은 진료환경 과 좋은시설을 만들기 위한 공사 인 만큼 김안과를 찾아 주시는 분들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꺼라 믿어요^^
지난번 바닥공사때는 엄청난 소음으로 입원실에 입원하셨던 환자분들께서 전실을 가셔야만 했어요
그때 모든 환자분들께서 협조적으로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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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입원하시는 고객분들께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드리고 있어요
안과에 입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누르면 시간을 말해주는 시계 드리고 있어요
입원하시면 시계 시간을 맞쳐달라구 하시는데 이 시계가 1분 단위로 말을 하고
있어 처음엔 살짝 난감했지만 이제는 귀에 아주 익숙해져 있어요 ^^
이 말하는 시계가 얼마나 목청이 좋은지 여기 저기에서 시간을 말해 주고 있답니다 ^^;
 공사가 하루 빨리 끝나서 더 좋은 입원실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다큐 3일에 내가 나왔다!! 무소유를 느끼게한 행복했던 캄보디아 봉사후기-

” 다큐3일에 내가 나왔다!! 무소유를 느끼게한 행복했던 캄보디아 봉사후기”

캄보디아 봉사를 내가 가기로 결정 된 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였습니다.
평소 더위를 너무 많이 타는지라 가기 전 날에는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살이 찐 다음에는 여름에 파처럼 푹 처져 버리거든요.
(이번엔 특별히 KBS ‘다큐 3일’ 프로그램 함게 하는데 말이죠……ㅠㅠ)

첫 날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해서 설레는 맘으로(해외에 몇 번 못가봐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아~~ 몰려오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더운 공기!!! (당일 비가 왔다네요..)가 내 코에 들어오자
목을 조르는 듯이 답답한 느낌이였습니다.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 저는 벌써 온 몸이 땀이였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사실 이번 봉사부터 전기가 24시간 공급되어서, 이 전에는 밤 10시까지만 에어컨을 틀 수 있었습니다)을 켜고 샤워를 했습니다. 나와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이제는 오히려 수술복이 편안합니다.^^) 바지를 입으려는 순간… 허걱~~~~~ 카메라맨이 방안으로 급습을 하였습니다.
그 카메라맨은 KBS ‘다큐 3일’ 촬영이라며 씨익 웃으시더군요. 허겁지겁 바지를 추키고는 짐을 정리하려는데 카메라맨이 옆에 오더니 “주무시려는 거 아니에요? 왜 지금 수술복을 입으셨어요?” 하며 나에게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대셨습니다. (사실 어렸을 적에는 ‘야~~일요일이다’라는 MBC 아침 방송에서 반 대표로 나갔던 적도 있었고, 대학교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OX퀴즈 프로그램에도 나가 이휘재씨를 웃겼던 적도 있고^^, 공공장소에서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하는 지에 대한 깜짝카메라(?)에도 나가서 이창명씨와 인터뷰를 해본적도 있었구…)
하지만… 막상 카메라가 찍으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안그래도 말 더듬는데… “아, 예~~ 일년차때부터 입어서 오히려 편합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려구요”라고 더듬 더듬 대답은 했지만 으아~ 너무 창피했습니다.(전혀 예상 못했는데 실제 방송에도 나오더군요^^)

첫날 밤, 같은 방 사람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2시에 잠들기로 햇는데 여기 저기서 “꺼~억”하고 우는 도마뱀 소리와 다음 날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1시간 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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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5시 조금 넘어서 씻고 나와 전 날 가져온 물품을 옮기고나니 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입이 쩌억~~ 벌어졌습니다. 아침부터 너무나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있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아~~ 언제 끝나지?? 너무 덥다..씻고 싶다..자고 싶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었는데, 이런 우둔한 생각은 금새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쪽 눈은 실명되어 이제 한쪽 눈으로 사셔야 되는데 그 눈마저 홍채염이 심하고 안압이 올라가 있었고, 전방에 염증이 많아 당장 치료가 시급한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센터가 있는 씨엠립에는 안과가 없었고 게다가 저희 봉사단이 떠나기 전에 한번 더 오라고 했는데 그마저 버스를 탈 돈이 없어서 못 온다는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덥고 피곤한 생각은 사치였습니다. 너무나 그 분에게 죄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ㅠㅠ
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의사로서 너무나 무능력한 제 자신을 보며 의대 6년, 인턴 1년, 공보의 3년, 레지던트 4년 ‘아, 난 그동안 뭐한거지…?’ 이 시간동안 배워왔던 것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부지기수였고, 제가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막 가운데까지 심하게 자라 들어온 익상편 환자를 수술하고, 다음 날 그 환자를 만났는데 앞이 보인다고 했을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도중 조금 당황스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6시 쯤 수술실에서 마지막 익상편 환자를 수술하고 외래로 복귀했는데…
아~ 끝이 보이지 않는 내과 환자들..
그런데 제가 도와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저를 외래 사람들이 기다리더군요. 환자보라고…
환자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더욱 당황했습니다. 인턴 때 응급실에서 일 한 기억, 공보의 때 기억을 총동원해서 백 여명의 환자를 보고나니 저녁 8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환자를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캄보디아 환자들은 정말 의료시설이 낙후된 곳에서 생활하며, 진료도 받아본적이 없던 것 같았습니다.
청진기를 댔는데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숨 크게 쉬라고 하면 알아서 몇 번은 크게 들이마시고 내시고 했을텐데 거기 사람들은 처음 청진기를 보는 거였고, 제가 청진기를 대도 계속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설압자로 혀를 눌러 편도선을 보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아’하라고 하면 따라서 ‘아’하고 따라하는데 거기 사람들은 처음 해보는지 계속 혀로 설압자를 밀어내서 당황했습니다. 통역을 거쳐서 하는 거라 제대로된 의사소통도 서로 안되는 것 같고, 조금이나마 하루종일 기다렸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느낀 것이 많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최빈국중에 하나인 캄보디아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것 입니다. 줄이 늘어져 기다리면서도 서로 얘기하고 짜증 한 번 안내고, 저녁 8시가 넘어서 끝나 그 곳 센터에서 밥을 주었는데 진료를 마친 환자들이 그냥 땅바닥에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십 여명씩 그룹을 나눠 앉아 밥을 즐겁게 먹는 것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소유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여유롭고 표정이 밝은 사람들을 보며 더워서 가기 싫어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 곳 센터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심심한지 자꾸 외래에 와서 저희들을 배회하더니 곧 친해져서 장난도 치고 지나갈 때 보면 아는 척도 하고.. 너무나 밝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곳 아이들 중 뚱뚱하긴 커녕 통통한 아이들도 없어서 그랬는지 저를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슬프긴 했습니다.
몇일 지나자 제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한국말로 “뚱뚱이”하고 웃으면서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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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씨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그랬었죠^^;;

어느 덧 한국에 돌아오는 날, 그 동안 7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조금 더운 것만 빼고는 공기도 사람들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가 봉사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제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고 싶습니다~!

벌써 캄보디아가 그립습니다…

(한국에 와서 어느 덧 2주가 지나고 5월 10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는 별로 생각도 없이 늘 그랬듯
KBS 다큐3일이 아닌 영국 프리미어 축구를 보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TV에 제가 나온다며ㅎㅎ 되게 좋아하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