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즐거움이란 중요한 것이다.

벌써 4년째 ‘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에서 일본선수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평소에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까 한번 연습(?)삼아 해볼까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좋아서, 만남이 좋아서 빡빡한 일정에도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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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1회를 맞는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는 4월 29일(일)이였습니다. 대회는 당일 하루지만 담당 선수들의 일정에 맞추어 자원봉사자들의 스케쥴이 정해집니다. 저희팀(여러 선수의 무리와 선수의 자원봉사자들)의 일정은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금요일은 문화탐방 일정으로 ‘이천 장애인 체육종합훈련원’ 견학과 저녁에는 ‘ 레이디가가’ 콘서트까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민속촌이나 떡 박람회 등의 일정으로 점심식사까지만 일정이 되어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욱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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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코스답사와 의무분류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입니다.
제 선수는 오전에 연습을 하고, 저는 담당선수의 부인이 가고 싶다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오후에는 이태원 쇼핑, 저녁은 삼계탕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호텔까지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걸어오는 길에 사장님(마라톤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자)에게 물었습니다.
http://media.daum.net/press/view.html? ··· newswire (사장님의 인터뷰 기사)


” 피곤하지 않으세요?”
” 즐거우니까 괜찮아.”
” 인생에서 즐거움이란 중요한 것이네요.”
라고 말하자 좋은 말을 한다며 즐긴다면 활력소가 돼서 오히려 힘이 나는 거라고 하십니다.


매년 하면서 빡빡한 일정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이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냥 한번 만나고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 만나면 즐거운 사이. 이렇게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하고 있나 봅니다^^ 21회 대회는 끝났지만, 끝남과 동시에 22회 대회를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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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김안과병원 직원들도 자원봉사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하는 마라톤 종목도 있는데 같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 다음에는  ‘이천 장애인 체육 종합훈련원’ 과 일본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꼭 가는 맛집을 소개할께요!!)

25주년 행사

지난 주말은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어언 25주년이 되어 다시 학교에 찾아가서
스승님들을 뵙고 동기들을 만나는 HOME COMING 행사였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들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교발전기금도 내고 후배들 장학금도 내고 그때 공부했던 강의실 등을 돌아보았습니다.
많이 변했더군요…
하지만 하루 종일 강의실에만 있다가
‘나무야 우리도 햇살 좀 보고 같이 광합성 하자’ 하며 봄 햇살을 같이 맞던 그때의 목련나무는 그대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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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사은회 자리에서 오랜만에 스승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니 진짜 세월이 유수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리 높고 어려워 보이던 스승님들이
이제 같은 동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우리가 스승님들의 나이를 따라 잡았더군요..

좀 늦게 도착한 동기생의 하얀 머리를 보고 먼저 와 계시던 스승님들은
‘저 선생은 누구지? 내가 모르는 사람이네’ 하셨다고 합니다.ㅋㅋ

그날 스승님이 해주신 말씀
“원래 25주년 행사에 스승님들은 머리를 염색하지 말고 와야하고, 제자들은 꼭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와야 하는거다!”
이렇게 늦은 꾸중을 하셨답니다. ^^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7살 아들을 장가 보낸 동기도 있었고,
이제 6살짜리 늦둥이 아들을 둔 동기도 있어 ‘힘 좋다’는 부러움 반, 야유 반의 박수도 쳐주었고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은 말로 화답했습니다.
“부럽냐? 나는 50주년 모임까지 현역으로 일할거다! ㅋㅋ”

친구들은 예전 같으면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을텐데
‘세월 앞에 약이 없다’는 옛말대로 12시가 되자 반이나 남은 맥주들을 놓아두고 잠을 청했습니다.
나만 잘나고 세상은 못남을 비판하고, 사랑에 울고 웃던 20살의 청춘은 다 없어지고,
지천명의 나이답게 다들 자신의 부족함과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를 하며 맥주를 비웠고요…
늙으니까 남자들도 참 수다가 많아지더군요~ㅎㅎ

25주년에 모인 친구들이 다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지천명의 나이답게
환자들에게 잘 해주면서 50주년 모임에 다들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25주년 HOME COMING 행사를 준비하신 벗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몇일 전 백내장 수술 하기 위해 입원 하신 할머니가 계세요
할머니 치매가 있으셔서 협조가 안되서 전신마취로 수술 하셔야 되었어요..
보호자분 아드님이 너무 기억에 남고 정말 마음을 뭉쿨해졌어요…
정말 효심이 대단 하신 거 같아요…
 수술 전 불안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계속 끊임 없어 옆에서 얘기 주시고 계시더라구요
“어머니 수술 잘 받고  이제 눈 잘 보이면 바다도 보러 가고 꽃도 보러 가요
 아드님이 하시는 대화 중에 정말 전 눈물이 핑 돌았어요..마음이 따뜻해 지더라구요…
얘기를 들어보니 불안해 하실까봐 수술 몇일 전부터 집에서도 끊임없이 얘기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보호자분께서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깨시면서 안대를 하고 나오면 불안해서
안대를 다 떼어 버리실까봐 억제대를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 이 억제대는  많이 불편하지 않아서요 . 어머니 회복실에 계실 때  부탁 드릴께요”
  부탁하신다면서 주시는데  어머니에게 억제대를 해야 되는 마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해 하실 할머님을 위해  수술대기실에 함께 보호자분과 함께 들어가서 수술실에
인계를 하고 있는데 옆에 아드님이 계셔 든든하시진 할머님께서
” 죽기아닌면 까물아치기” 하시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수술 끝나시고 퇴원하실때까지 아드님께서 효성스러운 마음은 계속 되시더라구요…

얼마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된장국을 들으면서 눈물이 났던 기억도 나네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거 같아요…
정말 부모님한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2년 효녀 되기 프로젝트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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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이야기 (1): ‘베토벤의 음악인생’


안녕하세요. 김안과병원 녹내장 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베토벤의 삶과 음악’에 대해서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 순서로 오늘의 주제는  ‘베토벤의 음악인생’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절망의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순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다양합니다. 끊임 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인생

복잡해 보이는 선택들도 결국 요약하자면 가지 경우입니다. 맞서거나 피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순간을 피하기 보다는 당당히 맞서서 이겨내고 싶어합니다
.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성취감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절망 앞에서 정면대결을 택하여 치열한 투쟁 끝에
절망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힘을 내고 위안을 받습니다
.  

의사의 입장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절망의 순간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그 동안 각종 질병과 사고로 실명이라는 절망을 만나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왜 하필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절망에 대해서 그들이 있는 선택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안과의사인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있을지
…”
스스로 해답을 찾아낼 없을 인생 선배님들의 유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
질병의 고통이라는 절망을 음악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사람

바로 독일의 작곡가 루트비히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입니다.


베토벤의 고통

베토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부터 타계하는 순간까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지 않은 순간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스스로도 “(신체적 고통 때문에) 절망감에 빠지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야기 했을 정도입니다(1817). 알려진 대로 베토벤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베토벤 자신이 글들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베토벤은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 했고, 대인관계도 아주 서툴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생 여러 여인들을 사랑했고, 그녀들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찾으려 했지만 한결같이 비극적인 사랑으로 남았습니다. 베토벤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상에 남아 있는 그의 신체적 문제만 해도 간경변, 복수, 황달, 반복되는 복통과 설사(typhoid fever? ulcerative colitis?), 근시와 심한 눈의 통증, 관절염(rheumatoid arthritis? gout?), 잦은 고열, 납중독, 그리고 청각이상까지 그야말로 종합병원 수준입니다. 많은 질병들 중에서 베토벤을 가장 절망에 빠트린 것은 바로 청각이상 이었습니다.

여러 기록을 살펴봤을 베토벤에게 청각이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그의 20 후반으로 보입니다. 한참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고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문득 찾아온 치명적인 질병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도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번에 앗아가는 질병의 등장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있습니다. 베토벤의 청각이상에 의한 고통을 로망 롤랑(Romain Rolland) “1796년과 1800 사이에 귓병은 매우 심각했다. 밤이나 낮이나 울림 그치지 않았고 몸은 질환으로 지치고 시달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청각은 차차 약해져 갔다. 동안은 누구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사실을 숨기고 지냈다. 치명적인 병을 남에게 눈치 채이지 않기 위하여 사람을 피했고, 무서운 비밀을 숨기느라 갖은 애를 써야 했다.” 표현했습니다(아래 그림, 30대의 베토벤).

결국 고통에 시달리던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비엔나(Wien) 근교의 작은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죽느냐 사느냐 해답을 찾기 위해 처절한 성찰의 시간을 가집니다. 고민의 흔적이 바로 1802년에 작성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입니다(아래그림,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양식은 유서이지만 실제로 자살을 목적으로 글은 아니고가혹한 운명에 좌절하는 베토벤에서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베토벤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유서를 작성한 직후 비엔나로 다시 돌아와서 그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곡들을 발표하면서 그의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바로 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의 시기가 베토벤의 ‘중기’시대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인생

음학자들은
베토벤의 인생을 크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눕니다.
초기는 여러 스승님들에게 음악에 대해서 배우고,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해나가는 시기이고,
중기는 30 초반에서 40 중반까지의 시기로, 청각이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자신이 처한 문제들을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시기입니다.
후기는 40 후반에서 타계할 때까지 10년의 세월로 시기에는 청각이 심각하게 소실되어 마치 선승(禪僧)들이 속세를 떠나 화두참선
정진하듯 외부세계와 단절한 내면의 세계로 침잠(沈潛)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타불이(自他不二) 경지에 도달한 베토벤이 젊은 시절, 극복과 투쟁의 대상이었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시기이기도 합니다(아래 그림, 50대의 베토벤).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특히, 피아노 소나타 29-32, 현악사중주 12-16)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오한 매력이 있습니다. 덕분에 1번부터 32번까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다 보면 누구보다 강인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람의 젊은 시절 재기 발랄한 모습과 꿈에 부푼 모습(초기), 청각이상 이라는 절망에 대한 치열한 투쟁과 분노, 운명과 맞서 싸워 이겨낸 성취감(중기), 그리고 마침내 절망마저 인생의 일부로 수용한 해탈의 경지(후기) 모두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베토벤이 청각장애라는 절망을 극복하고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한 중기시대의 서막을 장식한 곡이자,
제가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3번 교향곡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

 

김안과병원 봄나들이 춘계 등반~

지난 일요일,
원장님 주최 하에
김안과병원의 직원 친목도모를 위한 춘계 등반 일정이 있었답니다~
장소는 바로바로바로……..

서초구 원지동에 있는 청계산!!!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어요^.^

등반코스는 원터골-옥녀봉-원터골 입니다.

으쌰으쌰!!
열심히 올라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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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아프신 분들은 쉬었다 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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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이뿌져?
운동도 하고 고급 티셔츠도 받았답니다 호호~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은 수술실

우리 김안과병원은 소아안과도 있어서 아가들 수술도 꽤 한답니다~
소아수술의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우는 아이 잘 달래서 수술실 입장!!! 입니다



물론 씩씩하게 입장하는 아이도 있지만
어른도 오면 떨리는 수술실인데
무서운 게 당연하지용
어떤 아이들은 너무 슬프게 울어서 보는 이마저 가슴이 아프게 하기도 하구요..
얘들아 울지마….너희를 해치지 않아요ㅠㅠ


우리만의 힘으론 아이들을 달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껴질 무렵..
우리도 뽀로로 대통령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습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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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뽀로로 특공대 출동 준비 완료!!!ㅋㅋㅋㅋㅋ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아이패드와 뽀로로 인형을 구입하여 수술실로 유인(?)하였더니
효과가 아주아주 좋더군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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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주사도 잘 맞았죠^^
우리 씩씩한 아가는 계속 뽀로로 감상중이랍니다 히히히~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김안과병원 수술실의 노력은 계속 됩니다~~~
마지막으로 친근하고 다정한 수술실 팀원들의 사진을 투척하며 저는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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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여러분, 물거나 해치지 않아요~~


                                                                           

KPOP star top 10 이정미가 아름다운 이유

사용자 삽입 이미지KPOP star top 10 이정미가 아름다운 이유


약 7개월간 장장의 기간동안 주말 저녁을 장식했던 KPOP star가 막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초반 부터 발군의 노래실력을 자랑했던 박지민양의 우승이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중저음 소울 이하이양의 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박지민양의 노래를 몰입하게 하는 고음과 눈을 살짝 감고 흔들어 대는 손끝, 졸린 듯 윙크를 해대는 이하이양의 몽환적인 모습,
날카로운 눈화장에 과감한 변신을 했던 백아연양, 탈락되는 그 순간에도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던 이미쉘양,
군인 아저씨 백지웅, 어머니의 된장국 이승훈군, 윤현상 박제형 군, 아 그리고 치어리더 김나윤양 모두 장래에 대스타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방송 Top 10에서 탈락했던 이정미양.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우승을 하게 될 사람은 노래 실력 뿐만 아니라 외모, 이미지, 시청자의 호응도 등의 여러가지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할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가장 먼저 탈락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입안의 공기가 있는 없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발성법에 대해 (박진영의 레파토리 중 하나 였죠^^) 혹평을 들었지만
그래도 이정미양이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 마지막 10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아름답게 합니다.
아마추어 오디션으로 오랜 기간 동안 소속사에 속해 있던 여러 참가자들이 자기만의 색깔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 했을때 그 틈을 이기고 여러번 패자 부활전을 통해 우리를 감동 시켰고,
마지막 순간 모두가 포기했던 그 순간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와 그 기회를 잡은 순간은 정말 감동 스토리의 한장면 이었습니다. .


물론 가창력도 부족, 혼자만으로는 노래 한곡을 제대도 부를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는 혹평까지 들었지만,  이미 수펄스로 그녀의 가치는 증명이 되었고, 그녀가 만든 아름다운 도전의 스토리만으로도 Top 10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넘치리라 생각됩니다.


어제로 이제 일요일 저녁 집을 못 떠나게 하던 KPOP star 가 막을 내렸군요.


어쩌면 새로 발굴한 원석 TOP10 말고도 우리가 잘 몰랐던 보아, 양현석, 박진영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그들이 정말 왜 스타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합니다.
언제나 애 같은 모습이었던 보아가 이렇게 성숙한 대스타가 되어 어린 지민양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며 눈물 흘리던 모습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은 서태지의 그늘에 가리기도 했었고,
신비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대중에 잘 나서지 못했던 현역시절을 떠올리면
약간 동네형같은 이미지, 왜 YG가 유명한 기획사가 되었는지를 옅볼수 있는 제작자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고,
늘 저 외모로 어떻게 연예인이 되었을까 생각했던 박진영은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막을 내린 KPOP star가 긴 시간 감동을 준 만큼 이 원석들이 펼칠 장래에 무대를 기대해 봅니다.
어쩌면 지민이니까 잘할거야 라는 기대 보다는 그래 정미가 이렇게 훌륭해 졌어 하는 마음이 제게는 어쩐지 더 커지네요.
물론 두명다 앞으로 길은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만 성공이 돌아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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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로 백내장 수술을 한다?

레이저로 백내장 수술을 한다?


레이저 백내장 수술을 하는 시대가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 백내장수술을 레이저로 하는게 아니었어?”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10여년 쯤에 레이저를 이용해서 백내장 수술을 했지요. 하지만 그때 도입된 레이저 백내장 수술은 요즘 사용하는 초음파 백내장 수술보다 워낙 합병증이 많이 발생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답니다.


그럼 요즘은 어떻게 하냐구요/


물론 초음파 이용해서 백내장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음파로 백내장을 분쇄해서, 흡입하여 제거하는 모습)


 


백내장이라는 것은 눈속의 렌즈 투명하지않고 혼탁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렌즈가 혼탁해 지면 백내장이 딱딱해지거든요. 그래서 초음파로 백내장을 분쇄해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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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백내장을 싸고있는 보자기가 있는데 백내장 앞쪽 보자기는 구멍을 내서 백내장을 제거하고 백내장 뒤쪽 보자기는 남겨두는데(그래야 백내장을 안전하게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도 안정적으로 보자기 속에 위치하게 ), 과거 레이저 백내장 수술기계는 보자기 뒤쪽에 구멍을 많이 냈습니다. 그럼 부작용이 많이 생길 있거든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이저로 백내장 앞쪽 보자기에 구멍을 내고 백내장을 여러조각으로 쪼갠 모습)


 


그런 레이저가 요즘은 많이 발달해서 백내장 뒤쪽 보자기는 남겨두고 딱딱한 백내장만 여러 조각으로 쪼개놓으면 다음 초음파기계로 조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초음파로 백내장을 분쇄하는 것보다 남겨진 보자기에 구멍을 위험이 많이 줄어들게 되거든요.


그리고 보자기의 부분은 구멍을 내서 백내장을 제거하는데 일부러 만드는 백내장 앞쪽 구멍을 레이저를 이용해서 항상 일정한 크기로 정확한 위치에 만들 있어서 남겨진 보자기가 안정적으로 남게 해줍니다.  바늘로 만드는 앞쪽 보자기 구멍보다 훨씬 정확해 지는 것이지요.


 


아무튼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안전하다고 하는 백내장 수술도 더욱 안전하고 쉽게 수술할 날이 좀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네요


김안과병원 새내기 안과의사 장선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안녕하세요.
김 안과 병원의 장선영입니다.
벌써 병원에 입사한지 한 달이 훌쩍 지나 따뜻한 4월이 되었네요.
참. 저는 올해 3월에 김 안과 병원에 입사한 안성형 파트 전문의입니다.
 
옆집아이 Blog에 어떤 얘기를 시작으로 나를 소개해야 하나 고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저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이 화려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 사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보시는 분들이 재미 있어할 것 같지도 않고.
저는 뼛속부터 나의 얘기를 하기 어색해 하는 사람이거든요.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한 달 정도 고민했으면 할 만큼 했다. 더 생각한다고 나올 것 도 없겠다 싶어서
일단 나의 일상적인 얘기부터 간단히 써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시작이 반이잖아요.


3월 2일 금요일 출근 첫날. 
김 안과 병원은 안과전문병원으로서 인지도가 높고, 환자가 많기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전 입사 전부터 경고와 비슷한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외래진료를 보다 보면 환자가 많아서 1년 365일 목소리가 쉬어 갈라져있다.”
“일이 많아서 몸이 피곤하고 지쳐 병원일 말고는 다른 일은 못 할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등등이요…


따라서 전 새로운 직장에 대한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가득한 맘으로 첫 출근을 했답니다.
출근 첫날부터 시작된 외래진료. 그 때 저를 도와준 사람은 호정씨였습니다.
처음 보는 저에게 그랬지요. “오늘은 제가 선생님하고 있어 드릴 거에요, 어제 좋은 꿈 꾸셨나 봐요. 제가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순간 두려움과 긴장감이 풀리면서, 병원이 낯설지가 않았고, 편한 맘으로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제가 입사한 첫날 느꼈던 병원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은 이후로도 계속 지속되었고, 호정씨가 그랬던 것처럼 김 안과 병원의 직원 한 분, 한 분이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병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애정은 당연하게도 환자분을 대할 때 표현이 되기 마련입니다. 환자에게도 애정이 생기는 것이지요.


외래에 환자가 많고, 기다리는 환자 대기 시간 걱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마음이 다급해지더라도 나를 위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일요일에 외래 보느라 힘내라며 제게 복 돼지와 김수현 노래를 보내준 누구누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ㅎㅎ. 제 메일화면 인증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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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도 즐겁지만, 김 안과 병원의 수술방 간호사분들도 새로 온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기는 뒤지지 않았지요.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것은 편하게 수술할 수 있게끔 수술하는 의사를 배려하는 마음씀씀이였습니다. 수술자가 도와주는 사람들의 충분한 지지를 받으면서 든든하고 편한 마음으로 수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된다면, 이 또한 환자의 수술 결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며, 가며 큰 미소로 인사하는 김 안과 병원의 직원 분 들 덕분에 새로운 병원에서 어려움 없이 적응하며 잘 지낼 수 있어서 전 행복합니다.


그런 행복한 마음이 환자분들에게도 분명 전달되겠지요.? ^^


그럼 첫인사는 이만 줄이고요, 다음 얘기에는 안성형센터의 선생님들을 소개해 볼까 하는데요. 글재주는 없지만, 기대해 주세요. ^^ 그럼 이만…….

볼링 동아리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람쥐!

볼링 동아리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람쥐!
 


사용자 삽입 이미지안녕하세요. 볼링 동아리입니다.
저희 볼링 동아리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우선 병원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정도인 신동아아파트 옆에 위치한 로얄볼링장으로 장소를 옮겼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열심히 근무하고 가끔 가끔 쌓일 스트레스 볼링핀 쓰러트리며 풀면 좋겠죠??
볼링 뿐만 아니라 당구, 포켓볼, 미니축구게임까지 모두 즐길수 있어요.


볼링 치기에 앞서 저희는 팀을 구성해서 우승팀에게는 푸짐한 상품까지 팡!팡!
볼링도 치고 상품도 받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리고 1석 3조 아닐까요??
 


이렇게 볼링을 치고 나서 허기진 배를 채울 맛있는 식사까지 제공해 준다네요.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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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끔은 회식도 한답니다.
여러분 볼링이 생활스포츠 인거 다들 아시죠??
남녀노소 편하게 즐길수 있는 스포츠랍니다.





운동을 전혀 못하시는 분, 공을 두려워 하시는 분들 겁먹지 마세요.. 즐기기만 하면 된답니다.
김안과병원 직원 여러분에게 언제든지 볼링동아리 문이 열려있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들겨 주세요~!

망설이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